퇴사

1. 기이한 우연

함께 공부하는 동기가 이력서를 올려놓았는데 어디 회사 대표님께서 직접 연락을 주셨다고 했다. 내용은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는 일종의 오퍼였다. 하지만 당시 동기는 다른 일을 하고 있었고 node.js 라는 말을 듣고 바로 내가 떠올랐다고 했다. 그래서 소개를 시켜드리겠다고 시작된 것이 대표님과 나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기이한 우연이다.

그 후 간단한 면접을 통해 내 생에 첫 IT 회사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2. 삐그덕 거리는 시작

회사는 문체부, 창업진흥원에서 선정돼 약 1억 정도 받은 회사였고 구성원은 총 4명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랑 함께 일할 팀원은 없다고(?) 하셨다. 회사에 개발자는 나랑 같이 들어오신 신입 프론트엔드 개발자, 저녁에만 일하시는 유니티 개발자 총 2명이었다.

물론 협업할 수는 있는 동료는 있지만 나와 같은 기술 스택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팀원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node.js 프로젝트를 조금 해봤으니.. 일단 부딪혀보자" 라는 생각이었다.

1. AWS 계정
2. SSH PEM Key
3.notion에 정리되어 있는 컨벤션

일하기 시작한 후 받은건 위 세 가지뿐. 컨벤션은 자바스크립트 eslint 설정 하나면 끝날 스타일 컨벤션이 끝이었다. node.js 로 구성되어 있다는 서비스는 정말 HTML만 뿌려주는 웹서버 역할만 하고 있을 뿐 실질적인 백엔드 서버는 Django 였다. 당시에 갑자기 좀 막막했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지? 라는 생각을 했다.

중요한 건 이다음이다.
엉망인 환경을 만나고 난 뒤에
그래서 못해먹겠다가 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겠다
가 될지는 내가 정할 수 있다.
(향로님 블로그)

물론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겠다를 선택했다. 나에게는 물어볼 사람도, 남겨진 Document도 없었다. 그렇게 알몸 으로 야생에 뛰어들었다. 본분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낀 대학 시절과 달리 내가 왜 월급을 받아도 괜찮은지, 내가 쓸모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제야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3. 업무

Django 를 내가 배워서 실무에 적용하기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기능을 빠르게 치고 나가야 하는 시점인 회사 입장에서 유일한 백엔드 개발자인 내가 배우기만 하는데 시간을 사용하는 것은 손해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현재 내가 잘 아는 Express 로 API를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필요한 API 몇 개를 만들면서 해야 할 업무를 직접 찾아서 개발했다. EC2 밖에 써보지 않았지만 Document를 보며 CodeDeploy, CodePipeline, S3, CloudFront, SES, Lambda, CloudWatch 등.. 많이 사용해보고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프로덕트를 개발했다.

회사의 목표와 나의 목표가 일치하는 순간부터는 정말이지 기술적 과제들이 널려있으니 나에게는 천국이 따로 없었다. (마치 미대생한테 입시 미술만 그리다 드디어 원하는 그림을 그리게끔 해주는 환경이랄까) 눈뜰 때부터 눈감을 때까지 내가 원하는 설계와 기획대로 개발할 수 있었다. 그래서 5개월간 약 80개의 API, 코드 배포 자동화, 파일 전송 속도 500% 증가, 회사 도메인 이메일 구축, 이메일 인증 등.. 구현하게 되었다.

기능을 빠르게 쳐내면서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먼저 투자를 제안하는 VC도 있었고 회사는 성공적으로 시드 투자 유치를 마칠 수 있었다. (프로덕트가 워낙 독보적이었고 대표님의 뚜렷한 인사이트로 투자유치를 마칠 수 있었지만 나의 공헌도 1%.. 아니 0.1%라도 있지 않았을까?)

재미난 시간을 보내던 중 문득 든 생각이 내 머리를 내려쳤다.

 

4. 잘 하고 있는 걸까?

물론 이 회사는 나에게 있어 천국이었다. 하지만 항상 몇 가지 걱정이 내 머릿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앞서 작성한 졸업작품 리펙토링에 관한 회고 에서 "내가 일하는 곳은 조직이기 때문에 유지보수가 쉽고, 잘 정돈된 코드를 짜야할 의무가 있다." 라고 말했다.

변명일 수 있지만 회사는 시드 투자 유치가 단기적인 목표였고 그에 상응하는 빠른 기능 개발이 요구됐다. 하지만 신입 인 내가 좋은 설계빠른 개발 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 가지를 포기해야만 했고 내가 버린 카드는 좋은 설계 였다. 왜냐하면 좋은 설계를 위해 기술 부채를 갚는 것에 시간을 쏟다가는 원금은커녕 이자만 갚다가 파산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좋은 설계 를 고려하는 엔지니어 가 아닌 코더 가 되어버렸다. 사실 그 부분이 엄청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엘리트 코스 출신 대표님의 추진력과 운영 능력은 군더더기 없이 완벽하셨고 인사이트까지 배울 점이 많았다. 그래서 당장 눈앞에 투자는 물론이고 이후에 비즈니스까지 크게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약 3년 뒤에 회사가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고 했을 때 나는 좋은 설계 를 고려하지 않고 빠른 개발 만 잘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때의 나는 정말 쓸모 있는 사람일까? 라는 생각을 했고 아마 다른 회사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5. 인프런

수백 명은 아니더라도 수십 명의 개발팀과 함께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 회사로 가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먹으니 좋은 기회가 왔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팀 합류 제안을 받게 됐다.

인프런은 예전부터 알고 있던 서비스였고 업계 1티어는 아니지만 인프런만의 특별한 컬러가 있었다. 그리고 최근 시리즈 A투자를 받았고 지금 합류한다면 정말 로켓이 발사되기 직전에 합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이전 회사에서 시드투자 => 시리즈A 단계를 경험해보았다면 인프런에서는 시리즈A => ~ 투자 라운드의 조직의 성장통을 경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꼭 함께 일하면서 배우고 싶은 향로님이 있었기에 정말 꼭 가고 싶었는데 합류하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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